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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달과 6.25 전쟁

6.25 전쟁과 교회

최재건 | 기사입력 2021/06/01 [13:45]

보훈의 달과 6.25 전쟁

6.25 전쟁과 교회

최재건 | 입력 : 2021/06/01 [13:45]

                                                           보훈의 달과 6.25 전쟁

 

 

한국전쟁 그때 교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 YouTube6월은 보훈의 달이다. 1일은 의병의 날, 6일은 현충일, 10일은 6.10민주 항쟁 기념일, 25일은 6.25 동란 발발일이다. 6.25는 한국 역사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크고도 비참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1950625일 주일에 북한의 도발로 시작되었다. 이 사실은 구 소련측 문서의 공개로 확인되었다. 한동안 6.25동란으로 불리다가 한국전쟁으로도 불리우는 동족상잔의 전쟁은 이념이 바탕이 된 동서 냉전의 첫 무력 대결장이었다.

 

북한은 815 해방 이후 소련군이 미군 보다 한달 먼저 급속한 진주와 남한보다 먼저 단독으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고 무력으로 공산화하려고 했다. 한 반도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 대결의 세계 전초기지가 되었다. 비록 세계 대전은 아니었지만 희생과 참전 규모로는 세계 역사상 3번째의 큰 전쟁이 되었다.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의 결의로 파병으로 참여한 국가만도 16개국이었다. 물자로 도운 나라도 근 50개 국가가 되었다. 피해의 규모는 각 분야에서 너무 커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신적, 문화적 파괴와 정치적, 사회적 고통과 경제적인 파탄은 너무나 큰 상처였다. 실종자가 남북한 합쳐 520만명, 1천만명의 이산가족, 남한에서의 이재민 만도 2백만명이나 되었다. 광업 생산력의 80%, 농업생산력의 78%, 공업생산력의 60%가 손상을 입었다. 유엔군 중 미국군인의 사망자만도 54.000여명이나 된다.

 

 

교회의 피해는 극심하였다. 파괴된 교회만도 1천여 곳이 되었고 전쟁 중에 알려진 순교자 납치된 성직자만도 400여명이나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제의 만행 중 하나인 제암리교회 23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6.25전쟁 중에 수백배에 달하는 집단 순교자는 그 규모와 잔인성이 엄청난데도 일반 사회에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다.

 

 

 

6.25전쟁으로 인한 집단적인 교회의 피해의 대표적인 예가 전남 염산교회 교인 77인을 한 우물에 젖을 담아 죽인 사건을 비롯해서 논산 병촌 교회 66, 전남 야월교회 65, 신안 진리교회 48, 상월 그리스도교회의 교인 33, 영암읍교회 24, 법성포교회24, 전북 덕암교회 22, 옥구 원당교회 22, 제내리교회 21, 전남 구림교회 18인 울산 월평교회 6인등을 살해했다. 일제의 만행을 넘어선 공산주의자들의 기독교 박해정책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받은 박해는 최고의 박해 중 하나이다. 아마도 로마시대 이래 스탈린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 학살, 중국의 의화단 사건으로 입은 피해 및 모택동의 기독교박해와 더불어 처철한 박해였다. 동 유럽 여러 나라 공산주의 국가 보다 더 심한 기독교 박해 정책에 따라 북한의 교회는 조선 기독교도 연맹으로 통합되어 핍박을 받다가 소멸되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은 공산당 집권 몇 년 만에 사라졌다. 수많은 교인들과 성직자들이 남하하였다. 남하하지 못한 성직자 300여명이 처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교회의 수난과 박해와 순교는 통일 이후에나 그 대략적 면모라도 파악될 것이다. 남한의 교회는 오히려 북한 교인들의 집단 남하로 급성장했다. 피난민들은 피난지 마다 고향의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당을 세워 피난민 생활을 신앙으로 극복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당시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가 된 서울의 영락교회이다.

 

 

 

전쟁 중과 후에 미국을 비롯한 우방의 구호물자와 도움은 우선 생명을 부지하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 가난과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뚝 일어선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사실로 성취되어 최근은 세계10위를 오르내리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잘 사는 것만 자랑할 때가 아니다. 받은바 도움들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해야 할 때다. 장충체육관이나 광화문 앞에 있는 두 쌍둥이 빌딩을 지어준 필립핀의 도움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정도로 감사를 모른다. 다른 나라의 도움에 대해 감사는커녕 망각하는 것은 천박스런 벼락 부자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이나 기독교인의 근본 도리는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이다. 그 모범을 보인 것이 서울의 명성교회다. 명성교회는 에티오피아가 공산 혁명으로 경제적 파탄을 가져와 어려울 때 선교대회의 숙박비를 아껴 그들을 도우기 시작했다. 병원다운 병원이 아프리카 전역에 없어 유럽으로 가야하던 때 그곳에 훌륭한 병원을 세웠다. 지금은 아프리카 굴지의 시설과 위용을 갖춘 병원이 되었다. 수년 전에는 의과 대학도 설립하여 병원 발전의 토대도 확실하게 했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개 교회가 이룩한 장거였다. 한국교회와 교인과 국가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아직도 비록 휴전 중이지만 우리의 소임은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할 때다. 도움 받은 나라에 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도움 받지 아니한 나라도 도와야 할 위치에 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참사 때 주한 에콰도르의 대사가 6.25때 우리가 한국을 도왔으니 좀 도와 달라고 하는 요청을 듣고 민망하였다. 받기만 하고 상대방이 어려울 때 받은 도움에 대한 망각은 배은망덕이다.

 

북한의 핵이 위협하고 있는 때다. 이념대결의 전초기지에서 마지막 보루가 된 우리의 입장에서 이 난관의 해결을 위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어떠한 것인가? 대구폭동의 주역이 최문식 목사였고 6.25때 서울에 잔류한 목회자들을 괴롭힌 것은 정동 감리교회의 목사로 신학자로 추앙 받는 최병헌 목사의 손자요 연희 전문을 나온 최택이었다. 오늘날에도 남남 갈등의 전초에 성직자를 자처한 이들이 더러 있다.

 

보훈의 달이다. 6.25 때 산화 한 젊은 군인들을 보고 모윤숙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추모시를 남겼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많이 변화된 21세기가 되었지만 나라를 위한 선열들의 가장 귀한 목숨 까지 내어 놓은 희생을 기리고 통일을 기원하는 것이 보훈의 달을 맞은 기독교인의 자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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