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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슨

세계 최고의 의료선교사

최재건 | 기사입력 2020/12/25 [00:40]

에비슨

세계 최고의 의료선교사

최재건 | 입력 : 2020/12/25 [00:40]

에비슨

- 세계 최고의 의료선교사-

 

기독교는 지난 2천 년간 지속적으로 확장(expansion)되어왔다. 근대에 기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확장 전파시킨 가장 효율적인 선교방법은 의료선교였다. 아프리카대륙에서 선교의 문을 연 리빙스턴(David Livingston)도 의사였고, 중국 내지 선교의 개척자인 테일러(Hudson Tayler)도 의사였다. 슈바이처(A. Schweitzer)는 아프리카 랑바레네(Lambarene) 지역 의료선교로 노벨상까지 수상하였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선교도 의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18849월 가장 먼저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Board of Foreign Mission, PCUSA)의 알렌(H. N. Allen) 의료선교사가 건의하여 세워진 제중원(濟衆院)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선교병원이었다. 그를 이어 18854월에 내한한 언더우드(H. G. Underwood)는 성직자였지만 제중원에서 교사 자격으로 활동하였고, 그 후 연이어 내한한 헤론(J. W. Heron), 빈튼(C. C. Vinton), 호턴(L. S. Horton)은 모두 의료선교사였다.

 

북감리회 선교부(Mission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파송된 첫 한국 상주 선교사인 스크랜턴(W. B. Scranton)도 의료선교사였다. 그들의 내한 목적은 의술을 통한 기독교복음 전파였다.

 

한국에서 행해진 의료선교의 최대공로자는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이었다. 그는 토론토대학 의과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1893년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였다. 그는 서양 의술이 한국에 전파 초기 단계에서 서울에 세워진 제중원을 혁신하고 나아가 제대로 설비를 갖춘 병원을 설립하고 수준 높은 의학교육도 실시했다.

1935년 귀국할 때까지 43년간 선교활동을 펼쳤다. 에비슨이 한국 도착 후 3일 만에 태어난 그의 아들 더글라스 에비슨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브란스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했다. 다른 자녀들도 한국에서 2대에 걸쳐 헌신하였다.

 

그는 한국에 서구식 근대의학의 실질적인 창설자였다. 한말에 유명무실해진 병원과 의학교육을 현대식, 서구식으로 변혁시켰다. 제중원이 처음에는 조선 정부와 선교사들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었지만, 얼마 후에는 제중원을 선교회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병원으로 혁신시켰다.

 

한옥들로 이루어진 제중원을 기독교 선교사상 굴지의 근대식 병원시설을 갖춘 세브란스병원(Severance Hospital)으로 발전시켰다. 명목만 유지되던 제중원의학교도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의학교육에 참여하는 세브란스연합의학교(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혁신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를 굳게 다졌다.

 

그는 의료선교 현장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계 의료선교계에 효율적인 새 선교이론을 제시하고 실증해보였다. 그의 이론, 비전, 노력을 힘입어 세브란스병원ㆍ의학교ㆍ간호학교는 한국 의료교육의 토대를 놓아 수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 배출하였고, 그런 배경 위에서 오늘날 연세의료원은 20세기 세계 의료선교의 역사와 발전을 가장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기관이 되었다.

에비슨은 그 자신의 의료선교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무엇보다 의료선교가 간접선교가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선교 자체임을 확신하였다. 교육선교도 언더우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것 자체를 선교로 인식하였다. 가르치고 치유하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가르치는 일 자체를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선교행위로 본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선교관 위에서 6년간 제중원 책임자로서 경험하고 깨달은 바를 이론화하여 1900년 뉴욕 에큐메니컬선교대회(1900 Ecumenical Missionary Conference)에서 발표하였다. 그 강연의 제목은 의료선교에서의 우의(Comity in Medical Missions)였다.

 

그는 첫째로 의료 선교협동론을 제기하였다. 구체적으로 각 교단에서 파송된 의료선교사가 피선교지에서 불완전한 시설을 갖춘 작은 병원에서 각자 활동하는 것보다 함께 연합하여 최고의 시설을 갖춘 병원을 세우고 협력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주장의 신학적 토대는 그가 기독교 신앙인으로 살고 선교사로 봉사하면서 확신하고 있던 에큐메니칼적인 신학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들이 근본적으로는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을 믿는다는 점에서 교파 의식을 초월하여 연합할 것을 주장하고 한평생 연합사업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둘째로 병원과 의과대학 병설과 동시 발전론을 제기하였다. 이는 의료선교사가 피선교지에서 시설을 잘 갖춘 병원을 건립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의학교육을 지속적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두기관이 동시에 발전하려면 병원과 의과대학이 병설되어야 하였다. 그는 선교부가 의사를 많이 파송할 수 없기 때문에 본토인 의사를 양성하여 선교사를 대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료선교병원의 존속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의사의 공급이 필수적이므로 선교부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토착 의료인을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병원 운영과 의학교육을 통해 의료진의 공급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서로가 발전하고 의료선교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인식하였다.

 

셋째로 선교병원의 토착인 양도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선교가 종료되고 선교사가 떠나야 할 때가 온다는 점을 유념하였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병원과 의학교가 재정과 제도 등 여러 면에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피선교지의 본토인들에게 병원과 의료인 양성기관을 이양하여 스스로 운영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그런 생각에서 처음부터 토착인을 신뢰하고 최선을 다해 기술을 전수하고 훈련을 시켰다.

 

에비슨은 1900년에 발표한 자신의 의료선교 이론을 마지막 은퇴 할 때 이루어 한평생 동안 선교 현장에서 그가 제안한 의료선교방법론을 스스로 실천하여 마침내 그 이론의 효율성을 증명하였다.

 

뉴욕선교대회에서 발표된 그의 연합의료선교 주장에 세브란스(L. H. Severance)가 공감하고 호의를 보였다. 그가 교파와 국경과 인종을 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희생, 봉사의 실천 정신으로 한국에 병원 신축 기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일은 최신시설을 갖춘 병원운영과 수준 높은 의학교육으로 한국의 근대의학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세브란스가문은 대를 이어 도합 5만 달러가량의 거금을 희사하여 에비슨의 꿈과 이상을 이루게 하였다. 당신에 그 많은 돈으로 큰 병원을 짓기보다 작은 병원을 짓고 나머지 돈을 복음전도하는 데에 써야한다고 주장하며 큰 규모의 병원건립과 본격적인 의학교육을 반대하는 선교사들도 많았지만, 의료선교의 중요성을 주장한 에비슨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주장을 관철하였다.

 

마침내 19041116일 남대문 밖에 새로 지어진 현대식 병원의 개원식을 가졌다. 기부자의 이름을 좇아 세브란스병원이란 명칭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지만, 에비슨은 그 때 병원의 개원을 공고하면서 제중원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한 사실을 밝히 천명하였다. 이때부터 세브란스병원은 한국은 물론 동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운영되었다.

 

에비슨은 병원장과 의학교의 수장으로서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한 의료선교 협동론을 바탕으로 병원운영, 의학교육, 간호교육을 각각 체계화시키고 상호 연계시켜 같이 발전하게 하였으며, 여러 선교회들이 연합하여 운영과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병원의 면모와 규모가 쇄신되고 내실을 기하여 한국 의학교육의 중추적 기관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그는 1934년 은퇴할 때 그의 아들 더글라스 에비슨(Douglas Avison)이 부친의 자리를 승계하기를 원했지만, 남장로교에서 파송돤 오긍선 박사에게 의학교 교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로써 자신의 토착인 양도론도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는 이 모든 활동을 통해 그의 의료선교론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을 실증하였다.

 

에비슨의 의료선교론 위에서 세브란스의료기관들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그 영향력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하였다. 20세기 초반 전후하여 세워진 전 세계의 기독교 선교 병원들은 현재 거의 폐쇄 되었거나 발전하지 못한 실정에 있다. 그러나 에비슨이 제중원으로부터 발전시킨 병원과 의학교는 그의 의료선교론을 토대로 자립하고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 한국 유수의 의료기관을 이루었다.

세브란스병원과 의과대학은 병원 시설의 꾸준한 강화와 확대, 서양의사 제1호로부터 계속 이어진 토착인 의사의 공급으로 서양의학의 토착화와 의료기술의 향상을 이룩하였다. 한국 의학계의 의술이 오늘날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의 의료선교방법도 계승되었다.

 

서울의 명성교회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세운 명성 메디칼 센터가 그 대표적 기관이다. 종합 병원의 규모로 아프리카에서도 유수한 병원으로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의과대학도 병설하여 토착인 의사도 길러내고 있다. 2030년에는 에티오피아에 이양 할 계획도 갖고 있다.

 

나아가서 에비슨은 의료방면에서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에서도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양교의 교장을 18년 동안 겸직하면서 대학의 토대를 놓고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20년대부터 종합대학의 설립과 세의전ㆍ연전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해방 후 양교 통합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두 대학들과 병원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세계선교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제시하였다.

 

43년간에 걸친 에비슨의 한국 활동과 그 영향력은 의료선교사상 그 누구도 이루기 힘든 성과와 업적을 이룬 세계 최고의 의료 선교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은 국내외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세운 기관들의 계속 발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의 기본 사상인 에큐메니칼 정신에 의한 의료선교 협동론, 선교병원과 의대의 병설 및 동시 발전론, 선교병원의 토착인 양도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의료선교 협동론은 한국교회와 세계 기독교회가 공유하는 선교의 유산이다. 한국과 한국교회는 의료계와 고등교육에 기여한 에비슨의 헌신과 공헌을 되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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