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인생 -순례자의 소망-
교회력으로 12월이 되면 대강절(Advent)이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다.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세상에 임하실 때도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압제 속에서 해방자를 기다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인간의 소망이다.
인류의 소망의 삶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매일 매순간 인간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문명의 발달로 한없이 편안한 삶을 구가하는 현대인이지만 병마와 분쟁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감소되지 않는다. 위험과 위협의 절망 속에 가장 갈급한 소망은 이 땅에 참 평강과 평화가 임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디 평화만 기다리는가? 우선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한 삶을 바라고 혹은 한 자리를 기다리며 혹은 환상의 연인을 기다리기도 한다.
또 다른 어떤 기다림이 있다. 매스컴에서 코리언 드림을 갖고 입국한 해외 동포를 어느 누가 등쳐먹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한 밀입국하다 수장된 자들에 대한 보도와 탈북자들의 비참한 형편에 관한 기사를 보기도 했다.
그 같은 기사에 근 4반세기를 외국에서 살다 왔던 필자의 느낌은 남달랐다. 유행처럼 너도 나도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으로 이민 가던 1970년대에 필자도 유학생 신분으로 그 대열 중에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노력만 하면 얼마큼 금전적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 많은 교민들이 명예나 지위, 권리 획득에의 욕구는 쉽게 채울 수 없었다. 특히 한국에서 좋은 직장과 안정된 지위를 구가하던 자들에게는 그 갈증이 더한층 심했다.
미주 한인이민자들이 이런 문제에 봉착하여 고뇌할 때,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상현 교수는 소위 “이민신학”을 주창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교육받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 안정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다민족 사회인 미국으로 진출하였으나 결국 미국 사회 속으로 깊숙이 진입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현상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었다. 자신의 삶에 비춘 이민신학은 재미교포들에게 뿐만 아니라 국내에까지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설교와 강연은 교민교회에 선풍적인 관심을 갖게 했다. 미국 사회나 국가에 영향력 있는 직장도 못 갖고 겉을 맴돌며 좌절 속에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소망을 주는 신학이 되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필두로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의 기록이다. 인생이란 이민자의 삶과 같다는 성경적 인간관은 순례자로서의 삶의 본질을 되새기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소명감과 사명감을 갖고 살라는 것이다. 뿌리 뽑힌 자의 삶은 고통스럽고 다시 뿌리를 내리려면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 좌절하고 방황하기 쉬우나 그래도 신앙으로 사명감을 갖고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이민신학은 교민 사회와 한인 교회에 영향을 미쳐 소명의식의 회복과 이민생활의 정착에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 되었다. 필자도 당시 그 이론이 제기되던 현장에 있었고, 이후에도 거듭 이민신학 강좌와 글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삶의 현장에서 힘을 얻었다. 비록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변두리 인간”, “주변 인간”의 모습의 실체를 생생히 보아왔고, 체감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유학생이었기에 그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보다는 고국에서의 주류생활을 더욱 꿈꾸고 있던 터이었다.
그러나 근 4반세기만에 돌아온 고국은 낫선 곳이었다. 한국사회가 급변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와보지 못한 한국의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보다 귀국하여 서울에서 받은 충격이 더 컸다. 한강에 제2한강교만 보고 떠났는데 근 30개의 다리가 놓여있었다. 강남 같은 신도시가 형성된 것도 놀라왔지만 그보다도 더욱 큰 충격은 아는 이가 별로 없어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옛날을 생각하고 찾아간 지인들과는 사반세기란 시간 동안 단절되어 있어 “오랜만이다”라는 표현 한마디로 대화가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얼굴조차 몰라보며 “누구시더라”고 물었다. 한국은 연줄 사회란 것을 실감했다. 지연, 학연, 혈연으로 얽혀 있어 이 줄에 따라 사회생활의 변수가 무수히 창출된다. 뒤늦게 귀국한 필자에게는 그런 줄이 없었다. 있던 줄마저도 이젠 단절된 상태였다. 한번은 줄이 없음을 아내 앞에서 한탄했더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하나님 줄이나 붙잡으라”고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시금 되새기게 된 것은 “이민신학”, “주변인간론”이었다. 변두리 인생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목사로서의 교단도 문제였다. 미국장로교에서 목사 장립은 받았지만 국내에서 자라왔던 교단과는 신학적 거리도 있어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전공도 문제였다. 약간의 세월이 흘러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나 그 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미국도 한국도 끼이지 못한 채 변두리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인간의 삶 자체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의 삶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실로 인간이란 애초에 어디에서나 변두리 인간 또는 주변 인간으로 갈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이 아닌가? 결국 아내가 일러주었던 말처럼 하나님 줄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변두리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길이었던 것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소망을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교회, 기구, 단체 국가들의 발자취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본대로 쫓아가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고 나의 소망이다. 그래도 소망이 있으매, 소망이 내려준 현실에의 사명이 있으매 기쁘고 행복한 것이 나의 길 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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